2009년 05월 28일
정치란, 그러니까 야구같지가 않은 것이다. 정치는 명징한 기준으로 재단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보기에 아닌 것 같은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그에 따라 투표를 하는 것은, 그리고 그들을 내가 생각하기엔 명명백백하다 싶은 논리로마저 설득하려 해도 쉽지 않은 것은, 정치에는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은 듯 불명확하며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그럴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한 전제가 있기에 타협하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이고, 그것이 정치에 대한 학술적인 정의와 그리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정치는 '그렇고 그런 것'이다. 해서 정치의 본질은 인간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아니, 나아가 인간의 본질에 의해 전제되고 규정된다. 인간도 '그렇고 그런 것'이니깐. 그래서 그 옛날 서양의 어느 현자는 말했단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가정이 무너지는 곳에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너도 이명박도 정세균도 강기갑도 노회찬도 다 그렇고 그런 것, 그들이 하는 일들이 어찌되었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서야 정치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물론 나는, 다른 많은 논자들이 이야기하듯 정치에 선악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악함이라는 것마저도 인간적인 결함에서 시작된다고 전제할 때에야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저 양반은 왜 조중동을 볼까?'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맞기 때문이지' 혹은 '어떻게 저렇게 멍청한 일을 할 수 있지?' '사람 하는 일이란게 완벽할 수야 없으니까' 하다못해 이런식의, 조악하더라도 어떠한 목적에서건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야 정치는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수사가, 단순히 수사학적 표현이나 정치공세의 차원을 넘어서 특정한 정치적 주체가 상대를 규정하는 철학의 수준으로 상승하는 순간 정치는 실종된다. 80년대 운동권과 군부 사이에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것, 이명박과 북한 사이에 외교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전두환이 인간이라면 저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김정일이 인간이라면 저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거래하고 타협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일 테니까. 우생학적 사고가 정치를 남김없이 파괴하는 이유는, 이념에 지나치게 경도된 사고가 운동으로만 현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로는 악마와도 거래해야 한다.'는 말은 정치적인 수사로나 존재하는 것이지, 상대를 인간과는 전혀 다른 것, 그러니까 이를테면 악마라고 진심으로 믿게되는 순간 거래와 타협, 정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악마와 거래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차게 될까. 학살과 파괴, 혁명과 반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부르봉 왕조와 민중 사이, 유태인과 나치독일 사이, 일제와 식민조선 사이에는 정치라는게 들어설래야 들어설 수가 없다. 그들이 서로를 '그렇고 그런'인간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중이 왕을, 유태인이 히틀러를,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순사를, 하루 세끼먹고 가끔 잘못먹고 배탈나고 농담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술한잔 하고 늦게들어가서 마누라 한테 바가지도 긁히고 하는, 그런 인간으로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누구 책임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런식의 반목은 한쪽이-정치적으로건 물리적으로건-절멸할 때까지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혁명적인 상황 하에서-그 결과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논외로 하고라도-파국적인 결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에 대해서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가 가능한가에 매우 회의적이다. 조금 더 섬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가 국민 전체의 대표자는 커녕 한 정파의 정치적 대표자로라도 기능할 것을 바랄 수 있겠느냐는 것에 굉장히 회의적이다.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가정만 하나 하자. 작년 말 100분 토론은 한해를 정리한다며 나경원과 유시민이 나와서 서로 조롱하고 치고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올해 100분 토론에 한해 정리한답시고 나경원과 유시민이 마주보고 토론다운 토론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당신은 그러한 상황을 '어? TV토론하네? 볼만하겠는걸?'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기사 불러서 나가는거야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같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적어도 위트넘치는 농담이나 두루뭉실 돌아가는 이야기, 조롱과 장난, 이런것들을 그 자리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이제 더이상 이런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장난이 아닌'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부터 정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자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왜 소위 '좌파척결'을 하지 못하느냐고 징징댄 바 있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한다는 것이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갖추어졌다는 사회에서 이루어지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한 일을 하려면 적어도 1)혁명적 상황이 도래하여 반대파를 인간으로 보지 못할 상황이 도래하던지, 2)새로이 집권한 정치세력이 과거 세력에 대해 압도적일만한 도덕적, 정치적 명분을 지니고 있던지 하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선거라는 현대 민주주의의 일종의 주술적 제의(?)를 통과한 경험이 있는 반대파에 대한 것이라면 거의 하늘이 돕지 않는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야 한다. (왜 문민정부 이후에도 전두환은 청산되는데 박정희는 청산하기 어려운지를 생각해보라.) 정치란 그 성격 자체가 모호한 것이며, 때문에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한다는 것은 종종 그 반대파 몇몇 사람 뿐아닌 그를 지지하거나 혹은 지지했던 일군의 집단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으로 비춰지기 쉽상이다. 선거라는 제의를 통해 이어진 투표자와 정치인 사이의 심리적 동질성을 약화시키지 않은채 이루어지는 '청산'이란 '청산정국'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 정치는 실종된다. 그리고 그렇게 '정치'가 실종되면 가장 크게 위기를 맞는 것은 오늘의 실질적인 정치권력의 소유자인 집권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것까지' 반대파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존하는 모든 정치영역을 파괴할만큼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정치적인 사건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나는 이 사건이 현정부하에서의 '마지막' 정치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적어도 엊그제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의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노무현 정부기간동안 여당에 투표해본 경험이 없는 나마저도 '과연 이것들이 인간인가'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치졸했고 편협했고 상식 이하였다. 서울시청앞 광장이 끝끝내 막히고, 이념적으로 가까웠다는 전직 대통령의 추도사가 거부되었으며,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소요상황을 우려했다. 울분을 토하는 시민들에게 '안락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경찰서장과, 이 국민장에 내 세금은 한푼도 안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듣보잡' 정부측 인사의 발언과, 그간의 자신의 업보는 너무나 간단하게 잊어버리고 은근슬쩍 추모하고 넘어가려는 보수언론의 후안무치를 보며 이들이 과연 '인간이긴 한것인가', 나아가 이들이 나를, 노무현의 서거를 애도하는 나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울분섞인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맞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앞에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법앞의 평등은 '어느 정도'라는 수준으로 매우 '정치적으로' 현현하게 되며 이것이 정치적 사건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 법 자체의 안정지향적 성격과 맞물려 굉장히 격렬한 논의를 낳기 마련이다. 그 때 법앞의 평등은 시쳇말로 더이상 '순수'하지 않을 수 밖에 없으며 '정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현실에 존재하는 '어느 정도'의 가정된 합의에 지지를 보내는 쪽은 주로 보수파다. 재미있는건 지난 한달여간 법앞의 평등을 부르짖은 것이 혁명적 좌파가 아닌 보수파였다는 사실일게다. 문제는 이처럼 지극히 '정치적인' 상황속에서-그 자신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택은 사건 자체의 성질상 더이상 절대적일 수 없는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남아있는 자들은 그의 그런 절대적인 선택 앞에서, 법앞의 평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현실속에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내비추지 않을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이 와중에마저 여전히 애누리없는 법앞의 평등을 무서우리만큼 현실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삼성을 사랑하고 조선일보에 동의하며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보수파의 언행이다.
그래, 그렇다면 노무현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부터 논란이 있는 판이지만, 그의 모든 혐의가 맞다고 치고 이건희가, 이명박이, 방회장이 전부 노무현 수준으로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매일매일 검찰은 그들의 혐의랍시고 이런저런 불확실한 사생활을 대놓고 브리핑한다. 그들의 자식들이 외국에서 어떤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사는지 아홉시 뉴스에 보도된다. 에리카김과 이명박이, 장자연과 방회장이 어느 설렁탕집에서 밥을 먹고 옆에 다방에서 차한잔 한것까지 의혹을 제기한다. '아방궁'이라 조롱받는 작지않은 집에서, 그들은 이제 마당에 나와 잠시 담배 한대 태울 수도 없을 정도의 센세이셔널한 보도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연 그들이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일까? 나는 그들말마따나 이 썩어빠진 세상 속에서 그러한 상황이 닥쳐올 경우에 정치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런지, 정치라는 것이 의미를 갖긴 할런지 알지 못한다. 사실 평범한 시민들의 이 어마어마한 추모 열기 속에는 다른 많은 것과 함께 추모하는 사람 자신의 얼마간의 죄책감 또한 반영되어 있을게다. 그가 죽을만한 죄를 저지른것은 아니었다는 것, 그간 그렇게 힘들어해야 할 만한 죄는 아니었다는 것, 그럼에도 그를 지나치게 비난해서 미안하다는, 그런류의 죄책감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웃어야 할일인지 울어야 할일인지 모를 평가를 받아온 정부나 여당은 더 많이 추모했어야 했고, 더 많이 자숙했어야 했으며, 나아가 어렵더라도 사죄를 했어야 했다. 그것이 그나마 마지막 남은 정치의 영역을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는 최후의 기회였고, 나도 그들이 아무리 못되먹은 말종이라도 인간이라면, 그것도 '도덕적인' 인간이 아닌 그저 집권기간 안정된 통치를 원하는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그럴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전직대통령에 대해 끝까지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임을 굳이 내세운 여당 원내총무의 철딱서니 없는 추도사부터 시작해서 서거소식 직후 너무도 신속했던 시내통제, 거기에 상반되는 미흡한 초동수사를 보며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어찌보면 이 정부하의 마지막 '정치적' 사건이 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우려하게 된다. 남은 3년 반, 드디어 수사학적으로건 이념적으로건 그렇게 싫어한다던 '정치'에서 벗어나 '억압'과 '폭력'에 온전히 의지할 듯 보이는 이 정부의 통치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지 우려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노무현 서거 이후에도 정치는 가능한가?
# by Hong | 2009/05/28 13:57 | 목록보기 | 트랙백(1) | 덧글(6)